즐겨찾기         로그인 /  회원가입
정치와 비전 3
셸던 월린 지음 / 강정인, 김용찬, 박동천, 이지윤, 장동진, 홍태영 옮김

정가 : 23,000 원
페이지 : 479 쪽
ISBN-13 : 978-89-6437-188-6
출간일(예정) : 2013 년 08 월 20 일

“오늘날 우리에게 새롭게 필요한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비전 및 그 혁신의 내용은 무엇인가”
 

• ‘정치적인 것’의 등장과 쇠락을 중심으로 살펴본 서구 지성사
• 공적인 것, 공통성으로서의 정치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어떤 정치가 등장하는가
• ‘전도된 전체주의’와 ‘탈주적 민주주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와 민주주의의 비전은 무엇이며 그 형태는 어떤 것인가  


1.
이 책은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자 셸던 월린Sheldon Wolin(1922~ )의 대표적인 저서 『정치와 비전: 서구 정치사상사에서의 지속과 혁신』Politics and Vision: Continuity and Innovation in Western Political Thought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애초 『정치와 비전』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1960년에 출간된 바 있다. 그러나 40여 년 후 저자는 7개 장을 새롭게 추가해 2004년에 76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으로 새롭게 출간한 바 있다. 『정치와 비전』의 우리말 번역에는 7명의 역자들이 참여했으며, 3권으로 분권되어 그간 초판에 해당하는 『정치와 비전 1』(2007년, 강정인・공진성・이지윤 옮김), 『정치와 비전 2』(2009년, 강정인・이지윤 옮김)로 출간된 바 있으며, 이번에 출간된 『정치와 비전 3』(강정인・김용찬・박동천・이지윤・장동진・홍태영 옮김)은 새롭게 추가된 7개 장의 내용을 담고 있다. 


2.

“이 책에서 나는 정치철학의 지속적이고 변화하는 관심의 일단을 서술하고 분석하고자 시도했다. 오늘날 많은 지식인 집단 사이에서 전통적인 형태의 정치철학에 대한 강한 적대감, 심지어 경멸감마저 존재하고 있다. 내 희망은 이 책이 비록 정치철학 전통에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을 기꺼이 내던지고자 하는 자들을 제지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우리가 내버리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다.” _ 초판 서문 중.

 
정치와 비전』은 ‘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의미라는 일관된 관점 아래에서, 그 개념들이 처음 등장한 고대 아테네를 기점으로, 서구 정치사상사 속에서 어떻게 그 개념이 지속되고, 혁신되었는지를 주요 시기와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 점에서 『정치와 비전』의 전반적인 문제의식과 책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개념은 ‘정치적인 것’의 의미라 할 수 있는데, 다소 거칠게나마 이를 소개하자면, 월린에게 정치 혹은 정치적인 것은 ‘공적인’, ‘공통적인’, ‘일반적인’이라는 단어들과 공명하는 것으로, 정치철학의 고유한 대상이 되는 ‘정치적인 것’이란 무엇보다도 공동체 구성원 간의 차이를 정당화하고 화해시키며, 공통성communality을 유지・보존하는 일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는 공공선이 무엇인지를 모색하고 찾아 나서는 구성원 전체의 노력을 의미하기도 했는데, 이 점에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월린의 개념화는 정치사회라는 공동체와 관련된 고유한 힘, 이득, 위험, 희생이 그 구성원들 사이에서 평등하게 공유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표상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매우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편으로, 이와 같은 관점의 의미는 이 책이 처음 출간된 당시의 이론적・지적 풍토 속에서 좀 더 명확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960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는 행태주의 혁명이 그 정점으로 치닫고 있던 시기이자, 이에 따라 정치학이 그 독자적인 성격을 상실한 채 사회적인 것(예컨대 합리적 개인들의 행동 패턴 혹은 이익집단들과 경제적 이해관계의 단순한 반영으로 환원되는 정치학)으로 환원되고, 이에 따라 정치철학의 죽음이 널리 회자되던 시기라 할 수 있다. 나아가 민주주의를 공공선의 증진이나, 공적인 것에 대한 공동의 모색과 참여가 아니라, 정치권력을 둘러싼 통치 엘리트들 사이의 경쟁으로 축소시켰던 것이 당시의 지배적인 경향이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지적 풍토와 이론적 경향에 맞서 과연 우리가 내던져 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장차 초래할 결과가 무엇인지를 모색하기 위한 방편으로 서구의 지성사를 ‘정치적인 것’의 등장과 쇠락이라는 문제 의식하에 일관되게 저술했던 것이다. 하지만 40여 년 전의 시대적인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며, 월린이 당시에 가졌던 문제의식은 축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와 같은 저자의 문제의식은 정치를 비합리적이며, 비효율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가능한 이를 축소하거나, 회피해야 하는, 적절히 관리하고 규제해야 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월린은 2004년에 새롭게 증보된 장들을 통해 정치의 고유성을 부정하고 이를 이윤 극대화의 원칙과 효율성의 논리로 축소(다운사이징)하려는 신자유주의적 접근들과 이에 대한 맞짝으로 정치적인 것을 올바른 삶, 윤리적이고 규범적인 진리에 대한 추구로 환원하며 이를 엘리트들의 고유한 몫으로 돌리는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를 위시한 신보수주의 정치철학에 대해 도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정치와 비전』이 출간된 이래로, 월린이 제시하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다소 모호한 것으로, 다시 말해 ‘공적인 것’, ‘공통성’ 등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추가적인 규명이 좀 더 명료하게 이루어져야 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어 왔다. 나아가 오늘날의 탈근대 이론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와 같은 개념화는 다소 진부하며,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분리 불가능성, ‘공적인 것’의 상대성과 공허성, 그 이데올로기적 기능에 대해 갈파하고 있는 오늘날의 포스트모던한 이론 정세에 비추어 본다면 말이다. 사실 이와 같은 지적은 월린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정치철학이 직면하고 있는 주요 과제이자 『정치와 비전』이 대결하려는 주요 주제가 바로 “정치적인 것에 대한 명확한 관념을 보존하는 작업의 어려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대 플라톤에서 현대의 전도된 전체주의에 이르기까지 서구 지성사에서 제기되었던 ‘정치적인 것’과 ‘민주주의’의 비전에 대한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와 비전』은 오늘날 우리에게 새롭게 필요한, 새롭게 상상되고 발명되어야 하는 ‘정치적인 것’과 ‘민주주의’에 대한 비전 및 그 혁신의 내용은 무엇인지에 대한 주요한 이론적 자원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초판의 부제는 40년 전의 세계관을 매우 잘 요약하고 있는데, 그 부제에서 정치와 이론의 매개변수는 ‘지속’과 ‘혁신’으로 설정되었다. 근대의 기업에 초점을 맞춘 제10장을 제외하고, 이전 장들은 현재를 분석하기보다는 과거를 해석하는 데 일차적인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제 새롭게 추가된 장들은 그런 해석을 부정하기보다는 그런 해석들을 현대의 정치 세계에 집적 적용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증보판과 초판을 통일시키는 기본적인 신념은 만약 우리가 우리 시대의 정치에 제대로 대처하고자 한다면 과거 이론에 대한 비판적인 지식이 우리의 사유를 예리하게 하고 우리의 감수성을 키우는 데 비할 바 없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내 희망은 현재의 작업이 어느 정도 새로운 세대의 정치 이론가들에게 정치적인 것의 재정의와 민주정치의 재활성화라는 끝없는 작업에 매진하도록 고무하는 것이다.”

 
3.
정치와 비전』은 그 첫 출간 시점이 근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사상사 관련 서적들 가운데 오늘날 가장 적실성을 가질 수 있는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간 국내에 소개된 정치사상서로는 조지 세이빈George Sabine의 『정치사상사』와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의 『서양 정치철학사』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세이빈의 책은 사상가들의 주요 사상과 이론적 개념들을 적절히 요약하면서 소개하기 때문에 입문자들이 서양 정치사상사를 처음으로 접하고 이해하기는 수월하지만, 오늘날의 다양한 쟁점들이나 관점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나아가 영미 편향적이라 독일 사상가들(헤겔, 마르크스 등)에 대한 소개는 다소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으며, 때로 반공주의적 시각이 짙게 배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스트라우스의 책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그의 책에는 보수주의적 시각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두 저작은 서양의 사상가들을 시대별로 망라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입문자들이 참고하기에는 어느 정도 수월한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월린의 『정치와 비전』은 정치적인 것이 어떻게 개념화되어 왔는가, 정치의 독자성과 자율성이 사상가들에 의해 어떻게 개념화되어 왔는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여러 사상가들은 균등하게 소개하고 있지 못한 단점이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일관된 시각하에서 서양 정치사상사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시대별로 주요 사상가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정치사상가들에 대한 월린의 독창적인 시각과 해석은 그 자체만으로도 연구자들과 일반 독자들에게 훌륭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정치와 비전』은 새롭게 개정 증보된 형태를 통해, 정치사상사를 일별하는 일관된 시각은 물론, 정치사상사에 대한 독해로부터 현대 정치 체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4.

정치와 비전 3』은 ‘전도된 전체주의’와 ‘탈주적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는 16장과 17장 이외에도, 근대적인 힘과 탈근대적인 힘의 조우 및 근대 권력에서 탈근대 권력으로의 권력 개념의 변신,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마르크스, 니체 등 근대와 탈근대의 정치, 포퍼, 듀이, 롤즈 등을 위시한 자유주의와 합리주의의 정치를 다루고 있다. 먼저 마르크스와 니체의 장(12장, 13장)에서는 각각 경제적 권력과 문화적 권력이 어떻게 정치적 권력을 대체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마르크스는 오늘날 전체화하는 권력의 핵심인 경제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해, 자본주의 체제의 고유한 작동 논리와 이를 통해 모든 것을 전체화하는 체계의 동력으로서 자본이 가진 힘에 대해 규명하고자 시도했던 사상가였다면, 니체는 경제의 우월성에 대해 도전하며, 정치적인 것을 문화로 대체했으며, 나아가 정치적인 것이 이상적으로 의미했던 ‘공적인 것을 함께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유약한 자들과 강한 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장으로서의 문화라는 개념을 제기한 최초의 이론가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전체주의와의 대결을 담당했던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이 책의 15장과 16장에서 다루고 있는데, 특히 지난 세기 자유주의의 공인된 두 개의 저작이라 할 수 있는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과 롤스의 『정의론』이 주된 분석이 된다. 월린은 이 이론들에서 정치적 실질이 축소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포퍼와 롤스 두 이론가가 권력의 공유와 적극적 시민이라는 민주적 이상을 상대적으로 무시함으로써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분열이 조성되고 있음 규명하며, 나아가 이 두 이론가 모두 단순한 권력의 체계로서뿐만 아니라 전체화하는 경향이 있는 체계로서 자본주의의 정치적 중요성을 제대로 포착해 내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 주요 개념에 대한 소개 

어찌 보면, 『정치와 비전』은 그 증보판이 이미 초판의 결말에 예고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인 것의 등장과 그 의미에서 출발했던 󰡔정치와 비전󰡕은 근대의 등장과 자본주의의 도래, 그에 따라 경제로 상징되는 사회적인 것에 의한 정치적인 것의 대체, 그리고 그것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잠정적인 전망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잠정적 결말 이후 40여 년이 지난 시대는 다시 한번 정치적인 것의 운명과 역할을 되짚어 볼 충분한 시대적 배경을 낳았다. 정치가 사라진 시대, 데모스의 권력을 대신한 기업 권력의 시대. 그 시대적 배경을 상징하는 두 개의 단어가 바로 ‘전도된 전체주의’와 ‘탈주적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전도된 전체주의
월린의 진단에 따르면, 오늘 미국은 ‘전도된 전체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전도된 전체주의’란 전체화하는 권력을 지향하는 일정한 경향들의 다발로 존재하는 것으로 현실을 진단하기 위한 하나의 ‘이념형’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런 경향들은 새로운(탈근대적인) 그러나 아직은 잠정적인 체제인 슈퍼파워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하나의 이념형으로서 슈퍼파워의 ‘전체주의’ 체제는 팽창에 기반을 둔 체제로서 스스로 자신에게 부과하기로 한 한계 이외에는 그 어떤 한계도 받아들이지 않는 체제로 규정될 수 있다. 그것은 국내적으로는 민주적 헌정 체제가 부과하는 일체의 제한과 한계로부터 벗어나려는 권력이라 할 수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그 어떤 경계(국경)나 조약을 뛰어넘어, 자신이 원한다면 언제 어디에서든 자신의 힘을 전개할 수 있는 권력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전체주의의 ‘전도된’ 형태는 비록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슈퍼파워의 전체주의가 나치즘과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적 경향을 나타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타나는 형태는 20세기에 등장한 ‘전체주의’ 체제와는 매우 다른 형태, 말하자면 ‘전도된’ 형태를 띠고 있음을 나타낸다. 예컨대 나치 체제에서는 대중을 동원하고, 기업을 국가 권력에 종속시켰으며, 타국의 영토에 대한 병합이라는 외양을 띠었다면, 전도된 전체주의는 대중의 탈동원화, 기업 권력에 대한 국가 권력의 종속, 영토에 대한 병합이 아닌 우월성의 획득이라는 외양으로 나타난다.

이런 점들에서 전도된 전체주의는 또한 근대적 권력과 탈근대적 권력의 결합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한편으로 정부나 정당, 관료제 등을 통해 그 규모와 통치의 범위를 확대한 근대의 거대하고 집중화된 권력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합리성과 효율성에 비추어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부분에 대한 일체의 군살 빼기, 민영화(사영화)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시간 소모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입법 과정보다는 행정 명령을 통해 통치되도록 권장되는 체제다. 나아가 그것은 세계사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으로 선언되는 미국의 정치체제이자, 역설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민주주의의 본보기’로 세계에 수출되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이기도 하다. 

“나치즘과 전도된 전체주의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나치즘이 시민들을 동원하는 체제라면, 전도된 전체주의는 이전에 있었던 민주화의 경험에 겉치레의 찬사를 보내면서 시민들을 탈정치화한다는 점이다. 나치가 대중에게 집합적인 힘에 대한 의식과 자신감, 또는 ‘기쁨을 통해 느끼는 힘’을 부여하려고 노력했던 반면, 전도된 전체주의 체제는 나약함의 느낌, 곧 민주적 신뢰의 부식, 정치적 무관심, 자아의 사사화에서 정점에 이르는 집단적인 무력감을 촉진시킨다. 나치가 불평불만 없이 지배자를 지지하고 잘 관리된 국민투표에서 열광적으로 ‘찬성표’를 던지는 지속적으로 동원되는 사회를 원했다면, 전도된 전체주의의 엘리트는 좀처럼 투표에 나서지 않는 정치적으로 탈동원된 사회를 원한다.”


이와 같은 ‘전도된 전체주의’에서 공적 서비스는 이윤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정부의 운영과 활동 역시 기업의 활동 방식을 모방하게 되었으며, 경영이나 효율성과 같은 개념은 물론이고 수익성이라는 개념까지 정치의 장을 지배하고 있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라는 구분들은 사라지고, 공적 기능들은 사사화되며, 사적인 것의 운영 방식이 공적인 것의 운영 방식과 뒤섞여 버린다. 그 결과 시민적 덕성은 경제적 합리성으로 재규정되며, 민주주의 이론의 핵심 주체인 시민은 경제적 인간인 소비자로 전락해 버린다.

탈주적 민주주의
전도된 전체주의가 일정한 경향성들의 다발로 존재한다면, 이와 같은 경향성들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관리되는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 미국의 민주주의가 전도된 전체주의로 나아가고 있다는 월린의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미국의 정치적 수사에서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구에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월린에 보기에 이와 같은 현상은 민주주의의 활력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민주주의를 약화시켜 왔던 바로 그 힘들과 경향성들을 정당화하는 데 민주주의가 유용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뿐이다. 전도된 전체주의의 신화를 정당화하는 수사적 장치로서의 민주주의, 그것은 민주주의가 관리 가능하다는 사실과 더불어, 필요하다면 그것을 무시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엘리트들에게 그 어떤 공포도 야기하지 않는 대중의 권력으로서의 민주주의 말이다.

월린이 보기에, 전도된 전체주의의 외양인 ‘관리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일정한 과정 속에 가두어 민주적 정치를 길들이면서 민주주의를 하나의 안정적인 틀로 환원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즉 그것은 민주주의를 관리되고 통제되는 주기적인 선거, 만들어지고 회유되며 조작되는 여론조사, 얼마나 많은 민주주의가 허용되어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사법 체계의 재료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언제든 관리 가능하고, 조작 가능한 민주주의이자, 효율성, 균형 예산, 경제에 필요한 정치적 안정, 통치 가능한 시민에 걸맞은 민주주의이며, ‘신속 대응’에 신속히 화답하는 민주주의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하나의 안정된 형식 혹은 고정된 틀로 정형화하는 것은 맞서, 월린은 ‘탈주적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어떤 봉기적 계기에 출현하는 일시적이며, 우발적이고, 간헐적이며, 즉흥적인 모습(예컨대 역사적으로 그것은 거리에서의 시위나 봉기, 대중 회합, 대규모의 청원 운동, 관청에 대한 습격 등 다양한 모습을 띠고 나타났다)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주적 민주주의’가 이처럼 비제도적인 형태, 간헐적이고 일시적이며, 즉흥적인 형태라는 다소 소극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이 같은 순간적이고 계기적인 차원 외에도 현실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드러내는 저항의 차원을 가진다. 말하자면, ‘탈주적 민주주의’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들이 가진 작은 힘을 모으는 것 이외에는 부당한 것을 바로잡을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제기되는 고충에 호응하는 넓은 범위의 가능한 형식들 및 그 변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탈주적 민주주의는 기존의 정치제도 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 받지 못하는 데모스들의 고유한 정치 참여의 한 양식이자, 데모스가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드러내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민주주의에 대한 이와 같은 월린의 관점은, ‘탈주적 민주주의’가 단지 전도된 전체주의 아래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형태 및 전략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 그 자체의 고유한 성격임을 시사하고도 있다. 다시 말해, ‘탈주적 민주주의’는 하나의 고유한 헌정 형식(다수 인민의 통치라는 이상 및 그 근대적 형식으로서의 대의 민주주의)으로서의 민주주의라는 민주주의에 대한 기존의 상식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민주주의를 대의제의 형식으로 환원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오늘날의 지배적인 관점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월린은 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정치사회를 다스리거나 지배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여가 시간이 없는, 가난한 계급의 지배로 규정(아리스토텔레스)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늘 경제적 생존이라는 문제에 사로잡혀 있었고,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고단한 부담 탓에, 정치적 삶에 자신을 헌신하겠다는 소명 의식을 거의 가질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이와 같은 현실은 다수 대중이 통치를 했던 시기(말하자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의 시기)가 역사적으로 매우 드물었고, 간헐적이었으며, 희귀한 현상이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나아가, 역설적으로 오늘날 민주주의의 역사와 그 제도는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현실에서 실현시키려 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민중의 통치를 두려워하고, 이를 견제하고, 정치의 장에서 일반 대중이 출현하는 것을 최대한 제약하고자 노력했던 엘리트들(예컨대 매디슨을 위시한 미국의 헌법 제정자들)에 의해 주형되었다는 점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월린은 이처럼 민주주의를 하나의 통치의 형식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맞서, 민주주의를 하나의 저항과 투쟁의 형식으로 재규정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그 정의상 데모스의 권력 내지 통치를 의미했지만, 사실상 데모스는 그와 같은 권력을 행사하고 사회를 통치할 시간도, 여력도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사실상 민주주의는 하나의 온전한 통치 형식이라기보다는, 저항의 형식으로, 탈주적 민주주의의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월린이 보기에 민주주의는 이전 세대들에 의해 가능해진 사회적 협력과 성취의 혜택을 좀 더 광범위한 시민들에게 확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체제에서 대변되거나 포섭되지 못한 데모스의 고유한 권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민주주의는 제도화된 과정이 아니라, “순간의 경험이며, 고생고생해서라도 남부럽지 않은 삶을 영위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인 사람들이 절실하게 느끼는 고충이나 필요에 대한 반응”이며,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들이 가진 작은 힘을 모으는 것 이외에는 부당한 것을 바로잡을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제기되는 고충에 호응하는 넓은 범위의 가능한 형식들 및 그 변형태들”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원래 민주주의란 곧 부당한 것을 바로 잡는 시정의 정치, 즉 (더 많이 가졌고 더 많이 교육받은 이들이 통치를 독점하게 만드는) 부와 권력의 극단적 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공동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좌절과 분노, 폭력의 계기 속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탈주적인 민주주의fugitive democracy였다. 또 그 좌절, 격정, 폭력은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기층민을 ‘소란을 일으키는’ 족속으로 묘사하도록 자극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의미를 가진다면, 민주주의란 시민들의 공적인 삶, 다시 말해서 공통 관심사에 관한 심의에 참여한다든지, 자유로운 사회의 물질적・정신적 혜택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에 항의한다든지, 어떤 새로운 형식이나 실천을 고안해 낸다든지 하는 식으로 보통 사람들이 감히 ‘나서는’ 것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이해는 이제 ‘자유주의화된’ 민주주의, 곧 민주주의를 공통의 행위와 공유된 혜택보다는 사적 자유 및 이익과 동일시하는 관점에 의해 암묵적으로 도전받고 있다. 그런 경향은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전체주의적 잠재력을 발견한 학자들에 의해서 강화되었다. 그들은 대중의 의지 또는 집단적 의지를 표현하는 독재자에게서 전체주의 체제의 핵심적 요소를 찾았다. 그런 견해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다수결과 인민의 의지 및 인민주권에 대한 주장과 함께 집단의 의지를 최고의 정치적 가치로 고양한다. 민주주의와 집단의 의지를 연결하는 이런 추정에 입각해서 어떤 학자는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새롭지만 불길한 정권 형태를 창안하고, 거기에다 루소의 ‘일반의지’와 프랑스혁명의 공포정치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계보를 부여했다. 민주주의가 전체주의의 정반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려지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이제 역설적으로 전체주의는 민주주의의 한 가지 유형으로 묘사되었던 것이다. 당시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란 집단적 행동에 대한 깊은 의구심을 반영한 비판적 구성물이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약화시켜 정치적 행위에서 분리하는 한편, 그 대신에 민주주의를 개인의 권리 보호와 경제성장의 촉진과 동일시해야 한다는 이념을 정당화했다.”

 

 

셸던 월린(Sheldon Wolin, 1922~  )
월린은 현재 생존해 있는 미국의 대표적 정치사상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오벌린대학교를 졸업한 후 제2차 세계대전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1950년에는 하버드대학교에서 “보수주의와 헌정주의: 1760~1785년 기간의 영국 헌정 사상에 대한 연구”(Conservatism and Constitutionalism: A Study in English Constitutional Ideas, 1760~1785)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취득 후 잠시 오벌린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다가 1954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버클리대학교의 정치학과에서 강의했다. 버클리대학교에서 월린은 존 샤(John Schaar)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학술 활동을 했으며, 두 사람 모두 1960년대 버클리대학교의 학생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970년 학내 분규로 말미암아 월린은 버클리대학교를 떠나게 되었으며, 잠시 캘리포니아 주립 산타크루즈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다가, 1973년에 프린스턴대학교 정치학과로 옮겨 1987년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면서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강의했다. 프린스턴대학교 재직 중에는 프린스턴대학교 재단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을 지원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중단하도록 촉구하는 교수들의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은퇴 후 그는 주로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면서, 프린스턴대학교의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저널 『민주주의』(Democracy)의 초대 편집인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정치와 비전: 서구 정치사상에서의 지속과 혁신』(Politics and Vision: Continuity and Innovation in Western Political Thought, 1960년 초판, 2004년 증보판), 『버클리 학생 항쟁: 사실과 해석』(Berkeley Student Revolts: Facts and Interpretations, 1965, 세이무어 립셋과 공편), 『버클리 반란 그리고 이를 넘어서: 기술사회에서의 정치와 교육에 대한 평론들』(Berkeley Rebellion and Beyond: Essays on Politics and Education in the Technological Society, 1970, 존 샤와 공저), 『과거의 현존: 국가와 헌정에 대한 평론들』(Presence of the Past: Essays on the State and the Constitution, 1989), 『토크빌, 두 세계 사이에서: 정치적 삶과 이론적 삶을 사는 것』(Tocqueville between Two Worlds: The Making of a Political and Theoretical Life, 2001) 등이 있다.
 

 옮긴이

강정인┃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저서로는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2004), 『넘나듦(通涉)의 정치사상』(2013) 등, 역서로는 『로마사 논고』(2003), 『군주론』(2008, 공역) 등이 있다.
김용찬┃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및 UCLA 정치학과 대학원 졸업. 서울대학교, 서강대학교, 인천대학교 등에서 정치사상 강의.
박동천┃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저서로는 『깨어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2010), 『플라톤 정치철학의 해체』(2012) 등, 역서로는 『정치경제학 원리』(2010), 『사회과학의 빈곤』(2011), 『근대정치사상의 토대 1, 2』(2012) 등이 있다.
이지윤┃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수료. 논문으로는 “중심주의 극복을 위한 전통적 시도에 대한 고찰: 『도덕경』과 『논어』 재해석을 중심으로”(2003), “한국 보수주의의 딜레마”(2003, 공저) 등이 있다.
장동진┃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과 행정대학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이해』(2001), 『심의민주주의: 공적 이성과 공동선』(2012) 등, 역서로는 『정치적 자유주의』(1998), 『만민법』(2000, 공역),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2008, 공역), 『다문화주의 시민권』(2010, 공역) 등이 있다.
홍태영┃국방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저서로는 『몽테스키외 & 토크빌: 개인이 아닌 시민으로 살기』(2006), 『국민국가의 정치학』(2009), 『정체성의 정치학』(2011), 『인권의 정치사상』(2010, 공저), 『현대정치철학의 모험』(2010, 공저) 등이 있다.

 

┃차례┃

제1권┃정치철학과 철학, 플라톤, 루터, 칼빈
제1장_정치철학과 철학
제2장_플라톤:정치철학 대 정치
제3장_제국의 시대:공간과 공동체
제4장_초기 기독교 시대:시간과 공동체
제5장_루터:신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제6장_칼빈:프로테스탄티즘의 정치적 교육 

제2권┃마키아벨리, 홉스, 로크, 루소, 생시몽, 레닌
제7장_마키아벨리:정치 그리고 폭력의 경제학
제8장_홉스:규칙의 체계로서 정치사회
제9장_자유주의 그리고 정치철학의 쇠락
제10장_조직화의 시대 그리고 정치의 승화 

제3권┃마르크스, 니체, 포퍼, 듀이, 롤스 그리고 탈주적 민주주의
제11장_근대적 힘에서 탈근대적 힘으로
제12장_마르크스: 프롤레타리아트 정치경제학의 이론가인가, 붕괴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이론가인가?
제13장_니체: 시대를 앞서 간 전체주의자, 탈근대인
제14장_자유주의 그리고 합리주의의 정치
제15장_자유주의적 정의와 정치적 민주주의
제16장_힘과 형식
제17장_탈근대적 민주주의: 가상의 것인가 아니면 탈주적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