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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에 대한 권리
에티엔 발리바르 지음 / 진태원 옮김

정가 : 15,000 원
페이지 : 286 쪽
ISBN-13 : 9788964371442
출간일(예정) : 2011 년 10 월 17 일

 

민주주의의 경계, 경계의 민주주의

 

『정치체에 대한 권리』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저작 중에서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이다. 가령 그의 주요 저작들 중에서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공동으로 저술한 『인종, 국민, 계급 : 애매한 정체성들』(1988)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맹목점으로 남아 있던 인종, 국민의 문제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재조명한 저작으로 오늘날 인문사회과학의 확고한 고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대중들의 공포』(1997)는 이데올로기 개념의 동요를 중심으로 역사적 마르크스주의를 해체하고, 폭력, 경계/국경, 인종주의, 보편성 등의 문제를 통해 현대 정치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문제작으로 1990년대 프랑스 철학계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한 권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우리, 유럽의 시민들?』(2001)은 출간되고 나서 곧바로 영어를 비롯한 유럽의 주요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유럽연합과 관련된 논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바 있다.

 반면 『정치체에 대한 권리』는 이런 저작들에 비하면 덜 알려져 있을 뿐더러 영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로도 별로 번역되지 않은 책이다. 그렇다면 굳이 서양의 다른 나라들에도 널리 소개되지 않은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출간할 필요가 있을까? 어떻게 보면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완역해 출간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실천가, 활동가로서 발리바르의 면모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발리바르는 그 세대의 프랑스 철학자들(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장-뤽 낭시, 피에르 마슈레 등) 중에서는 국내에 가장 일찍 소개되고 또 가장 많이 읽힌 철학자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그의 저작들은 대개 아주 높은 수준의 이론적 논의를 담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들로서는 발리바르가 어떤 실천적인 문제의식을 통해 그의 철학적 사유를 전개하게 되었는지, 그의 추상적인 논의 속에는 어떤 정세적・실천적 경험들이 녹아 있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에, 이 책은 1990년대 이후 발리바르 사상의 주요 요소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정세에 대한 참여와 분석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명료하게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서문” 바로 다음에 나오는 “시민 불복종에 대하여”와 “우리가 ‘미등록 체류자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라는 두 편의 글은 분량은 매우 짧지만 매우 생생하게 활동가 발리바르의 목소리를 전해 주고 있다. 이 두 편의 글에서 발리바르는 이른바 “불법체류자” 내지 미등록 체류자를 실정법의 관점에서 무조건적인 단속이나 추방의 대상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는 사람들까지도 처벌의 대상으로 만드는 프랑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해 왜 프랑스 시민들이 시민 불복종 운동에 나서야 하는지, 매우 감동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또한 “민주주의적 시민권인가 인민주권인가?”와 더불어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국민 우선에서 정치의 발명으로”에서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듯이 1980년대 이후 프랑스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이 세력을 점차 확장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며, 국민전선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왜 정치의 재발명이 필수적인지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처럼 1990년대 이후 유럽 및 프랑스 정치의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제기된 인종주의와 이민자 문제, 네오파시즘의 발흥의 문제에 대한 실천적 참여 경험에서 비롯한 발리바르의 철학적 성찰은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위기 국면을 해명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오늘날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들은 일부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모두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또 오늘날만큼 민주주의의 위기, 민주주의의 후퇴, 민주주의의 약화에 관한 토론과 논쟁이 활발히 전개된 적도 드물다. 민주주의의 이상적 모델로 간주되곤 하는 서유럽 선진 국가들이나 미국에서도 민주주의의 후퇴와 극우파의 득세, 네오파시즘의 등장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의 민주주의의 침식에 맞선 실천적인 저항운동이 세계 전역에서 전개되고 있다. 지난봄 아랍 지역을 휩쓴 민주화 혁명의 물결에서부터 9월 이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전개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실천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다.

 1퍼센트의 금융자본 세력에 맞선 “나는 99퍼센트다”라는 시위 구호가 단적으로 대변하듯이, 이 민주화 운동은 계급이나 계층, 인종, 신분, 연령, 직업을 막론하고 소수의 과두제 금융 집단 및 그들을 비호하는 수구 세력을 물리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것은 발리바르 식으로 말한다면 “수구 세력이 반역을 독점하게 만들지 말자”,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 소수의 수구 세력들의 손아귀에서 피폐해지고 유린되도록 내버려두지 말자는 목표로 이해될 수도 있다.

발리바르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시민들의 저항, 시민들의 민주주의적 봉기는 민주주의 제도 자체가 부패와 지배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생생한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프랑스혁명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주의 체제는 억압과 착취에 맞선 대중들의 봉기를 통해 성립했으며, 시민 대중들 각자의 평등한 자유를 실현하는 것을 체제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구 세력이 반역을 독점하게 만들지 말자”라는 구호는 오늘날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 체제를 복권하고 다시금 민주주의가 새로운 활력을 얻게 만들게 하려는 발리바르 정치철학의 실천적 지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구호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간 신자유주의적 전화를 통해, ‘국민사회국가’라는 민주주의의 경계 속에서 발생한 민주주의의 후퇴를 되짚고, 오늘날의 현실에 맞게 민주주의를, 그리하여 정치를 새롭게 발명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번역, 소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지은이│에티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

 

프랑스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루이 알튀세르, 조르주 캉길렘, 자크 라캉에게 사사했다. 1965년 루이 알튀세르, 피에르 마슈레, 자크 랑시에르 등과 함께 유명한 『“자본”을 읽자』를 공동 저술했으며, 그 이후에도 계속 『역사유물론 연구』, 『민주주의와 독재』 등의 저작을 통해 역사적 마르크스주의를 개조하기 위한 작업에 몰두했다. 1980년 알튀세르가 정신병원에 유폐된 이후에는 역사적 마르크스주의를 해체하고 근대 정치 구조의 아포리아를 분석하며 근대의 철학적 인간학을 쇄신하려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또한 1990년대 이후 급속히 진행된 세계화 및 유럽 건설이라는 이중의 정세 속에서 대중운동의 확장 및 시민권 헌정의 민주주의적 전화를 모색하려는 이론적 작업 역시 발리바르 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국내에 번역된 『스피노자와 정치』(1985), 『대중들의 공포』(1997) 이외에도,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공저한 『인종ㆍ계급ㆍ국민』(1988), 『민주주의의 경계들』(1992), 『우리는 유럽의 시민들인가?』(2001), 『정치체에 대한 권리』(2002), 『유럽, 경계들의 헌정』(2005) 같은 다수의 저작들을 발표했다. 현재 파리 10대학(낭테르) 명예교수 및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어바인) 특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옮긴이│진태원

 

연세대학교 철학과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석사),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피노자 철학을 비롯한 근대 정치철학에 관심이 있으며, 루이 알튀세르와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등의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인문한국(HK)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라깡의 재탄생』(공저), 『서양근대철학의 열 가지 쟁점』(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자크 데리다의 『법의 힘』, 『마르크스의 유령들』, 피에르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우리, 유럽의 시민들?』 등이 있다.

콰드리지판 서문
서문

 

ㆍ시민 불복종에 대하여
ㆍ우리가 “미등록 체류자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
ㆍ“…… ‘안전’과 압제에 대한 저항”
ㆍ유럽적 시민권이란 가능한가?
ㆍ알제리, 프랑스 : 한 국민인가 아니면 두 국민인가?
ㆍ국민 우선에서 정치의 발명으로
ㆍ파시즘에 반대하여, 반역을 위해
ㆍ세계적 문화?
ㆍ민주주의적 시민권인가 인민주권인가? : 유럽에서의 헌법 논쟁에 대한 성찰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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