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정치학--- 이대근(경향신문 정치/국제 에디터)

2009-03-10 20:44:58, Hit : 4615

작성자 : 박상훈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에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양강 처녀’도 있고 ‘권정생’도 있고 ‘전국노래자랑’도 있다. 정치평론이라고 하면서 뭐 그런 것까지 썼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보통 사람들의 시시껄렁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못난 사람들의 넋두리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정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치란 정치를 업으로 삼는 유별난 집단인 정치계급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정치는 정치의 왜곡이라고 할지언정 본래의 정치라고 할 수는 없다.

정치는 이를테면 더 나은 삶을 위한, 어떤 것이다. 만일 당신이 열심히 일하는데도 살아가기가 힘들다면, 정치의 어딘가가 잘못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정치는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주인공들처럼 열심히 일하는데도 잘 안 풀리는 그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뭔가 도움이 되기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데 기여하라고 있는 게 바로 정치이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에 관한 과장된 수사가 아니다. 정치인들의 말을 잘 들어 보라. 전부 다 그렇게 이야기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자신을 머슴으로 낮추면서 국민을 잘 섬기겠다고 한 적이 있다. 시장을 찾아다니며 가난한 이들을 만나 먹고살기 좋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며 다니기도 했다. 그만큼 서민들이, 가난한 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정치란 소외된 이웃, 가난한 자들의 삶을 개선하고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을 찾아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요즘 이 대통령은 머슴이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시민들이 법질서를 지켜야 한다며 유난히 강조한다. 시민들이 떼를 쓰면 통하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관련법제정도 추진하고 있다. 매를 든 머슴이라고 할까. 마치 이 나라가 잘못된 것이 시민들이 못나서, 나쁜 시민들 때문인 듯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머슴다운 태도가 아니다. 머슴이라면 주인을 정성껏 모시는 일에 전념해야지 주인 때문에 머슴 못하겠다고 주인을 바꿔야겠다고 불평하면 결코 좋은 머슴이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이 이렇게 시민을 깔보고 있다면, 시민을 위한 좋은 정치가 나올 리가 없다. 엄마는 언제나 아이 보고 숙제도 안 하고 씻지도 않고 늦잠 잔다고 꾸짖을 자격이 있고, 아이는 항상 엄마 앞에서 언제라도 잘못을 지적당할 각오를 해야 하는 그런 관계가 대통령-시민의 관계는 아니다. 너는 나의 시민이 될 자격이 없으니 법질서에 좀 더 단련시킨 뒤 시민으로 편입시켜 주겠다고 하는 것은 법치도 정치도 아니다. 나쁜 정치에서는 재벌총수와 같은 돈 많은 자들이 자기를 위한 법을 스스로 만드는 진정한 주권자라고 할 수 있지만, 돈 없고, 빽 없는 시민들은 그들이 만든 법을 지키는 것만 허용된다면, 이야 말로 진정한 21세기의 머슴정치다. 아니, 그런 걸 정치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뭐랄까, 그냥 개똥같은 것이라고 해두자.

그런 나쁜 정치는 무슨 일을 하는지 우리는 잘 안다. 나쁜 정치는 살인도 한다. 용산 재개발 참사로 6명의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세입자들이 저렇게 격렬한 저항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또한 그들이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쁜 정치는 또 전쟁도 일으킨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적대적 태도로 남북대화가 단절되어 있고, 북한은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시사한 상태다. 군대 간 멀쩡한 당신의 아들이, 당신의 동생이, 당신의 친구가 서해상에서 혹은 군사분계선 상에서 남북 간의 느닷없는 전투로 죽을 수 있다. 이라크의 가난한 시민이 미군의 공격에 죽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단지 젊고 건강하다는 이유로 군대에 간 당신의 아들, 동생, 친구가 죽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쁜 정치가 아니고 무엇이며, 개똥같은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렇게 나쁜 정치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 정치는 우리의 영혼을 오염시킬 수도 있다. 나쁜 정치는 추방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는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사가 그렇듯이 행복 역시 쉽게 찾아오는 게 아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해도 정치를 바꾸지 못했고, 행복해지지도 않았다. 시민들이 전혀 정치적이지 못한 결과다.

하지만 이제 보통 사람들도 정치의 힘을 느껴야 한다. 그걸 느끼지 않고는 정치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는 그 정치의 힘을 보여 주고자 했다. 그리고 그걸 남들이 갖고 놀도록 놔두지 말고, 가난하고 못난 시민들도 한번 가져 보라고 권하고 있다.


gbook2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 꼭 읽어봐야 겠네요! 2009-03-12
18: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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