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없는 여당이 계속 승리하는 이유

2014-08-12 23:37:34, Hit : 4013

작성자 : Scheiner
국민들로부터 부패하고 무능한 집단이라고 엄청난 지탄을 받는 정당A는 선거만 치렀다 하면 늘 1등을 차지한다. 집권 기간 동안 실정을 거듭해도 다음 선거에서 정당A는 또 승리를 거두고 집권을 이어간다. 지나치게 방심했을 때는 다른 정당에게 가끔씩 권좌를 내주기도 하지만, 이내 전열을 가다듬고 집권 여당으로서의 지위를 곧 회복하곤 한다. 야당은 경쟁상대라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정당A의 이러한 독주가 당혹스러운 점은 첫째, 정당A가 지배하는 나라가 훌륭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이다. 이 나라의 시민들에게는 모든 정치적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 둘째, 정당A가 결코 인기 있는 정당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심각한 경제 침체 속에서 정당A의 부패와 무능함을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몇 년 전 이 정당의 지지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추락했었다.

정당들 간의 경쟁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뜻을 대의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사실상 이러한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다. 야당의 실패, 경쟁 없는 민주주의라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 후견주의가 지배하는 나라

무엇이 이러한 현상을 불러온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나라 정치 문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후견주의(clientelism)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이 나라에서는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정당들의 정책을 보고 투표를 하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나라의 유권자들은 전국가적 차원의 이슈나 국제적 현안에 대한 정당들의 입장 차이를 토대로 자신의 지지 정당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누가 더 발전시킬 수 있느냐이다. 또는 자신의 개인적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자신에게 물질적 이익을 선사하리라 기대되는 정당이 누구냐의 문제다. 유권자들이 그러한 선택을 내리는 이유는 정당들 간의 정책적 차별성이 크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여러 역사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정치 연구자들에 따르면, “선거에서 이 나라의 유권자들을 움직이는 것은 주로 개발 사업이다. 정책 이슈는 뒷전이며, 이상과 비전은 더욱 그러하다.”

유권자들과의 직접적인 연계 속에서 정당들이 지역개발사업과 같은 보상과 자신들에 대한 지지를 교환하는 후견주의적 정치 시스템. 그 반대편에는 정치학자들이 강령중심적(programmatic) 정치 시스템이라 부르는 것이 존재한다. 독일, 프랑스 등이 강령중심적 정치 시스템을 가진 대표적인 나라들인데, 이 나라들에서는 정당들의 보편적 정책과 당시의 빅이슈에 대한 정당들의 견해 차이가 유권자들이 표를 던지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강령중심적 체제보다는 후견주의적 체제에서 일당 독주, 야당 실패 현상이 더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후견주의만으로는 이러한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미국이나 브라질도 정치적으로 후견주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나라들인데, 이 나라들에서는 정권교체가 비교적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2. 중앙집권화된 국가 재정 구조가 끼치는 영향

야당 실패를 설명하는 또 다른 핵심 요인은 국가의 재정 시스템이 얼마나 중앙집권화 되어있느냐의 문제다. 후견주의 체제이면서 동시에 중앙집권적인 재정 구조를 가진 나라일수록 야당의 실패 현상이 강력하게 나타난다.

먼저 지역 정치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후견주의 체제에서는 유권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방 정부들이 그러한 보상을 위한 자원을 마련하는 데 있어 중앙 정부의 예산에 심각하게 의존하고 있다면, 그 지역의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은 중앙 정부를 움직이는 정당, 즉 여당 측에 선을 대고 싶은 동기가 강할 수밖에 없다. 지역 선거에서 야당이 이긴다면, 그 지역의 주민들은 개발 예산의 삭감을 각오해야만 한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멕시코 등이 이러한 나라 군에 속하는데 , 이 나라들에서 야당의 지방선거 성적이 하나같이 부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정당A가 다스리는 나라는 후견주의와 중앙집권적 국가 재정구조가 결합되었을 때 나타나는 이러한 특징이 극대화 된 사례로 볼 수 있다.

반면 미국, 브라질 같이 지방 분권적인 나라들에서는 후견주의 체제가 작동한다고 해도 지역마다 정당에 대한 지지가 분산되기 때문에, 여당의 독주 현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지역 정치 수준에서의 야당의 약세는 다시 전국 수준에서의 약세로 이어진다. 지역 단위에서 지지 기반이 약할 수밖에 없는 야당은 지역 사무소의 규모와 같은 조직력에서 여당을 당해낼 수가 없다. 그런데 지역 단위의 정치인들은 전국 단위 선거에서 가장 강력한 선거 운동 지원세력이기도 하다. 또한 지역 정치는 경험 많고 명망 있는 인물들을 정당으로 끌어들이는 창구이기도 하다. 지역 단위에서 강한 정당일수록 전국 단위에서 강한 경쟁력을 지닌 후보자를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여러 정치학자들의 사례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이렇듯 후견주의와 중앙집권적 재정구조가 결합된 나라들의 야당은 인물과 조직의 측면에서 여당에 비해 구조적으로 열세일 수밖에 없다.


3. 색깔 없는 야당

후견주의와 중앙집권적 국가 재정의 결합은 새로운 야당이 탄생하는 과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먼저 이와는 상반된 독일의 사례를 보자. 독일은 정치적으로는 비후견주의적이고, 재정적 측면에서는 비중앙집권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전국 단위에서의 정치적 우위가 지역 단위에서의 우위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나라들에서는 전국 단위보다 진입 장벽이 낮은 지역 단위에서 새로운 정당들의 실험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실험에 성공한 정당은 전국 단위로 성장해 기존 정치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중앙정부와의 연줄이 지역 정치에 큰 영향을 주는 나라에서는 지역 차원의 풀뿌리 정당이 탄생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나라에서 새로운 정당들은 대개 하향식으로, 다시 말해 중앙 정치 무대의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인들 중 다수는 다양한 컬러의 기존 정당에서 떨어져 나온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신당은 명확한 정체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내적 통일성을 지니지 못한 정당은 유권자들에게 잡다한 정치인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인상 밖에 주지 못한다. 유권자들은 그러한 정당의 기반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고 따라서 이들에게 냉소적 반응을 보내기 일쑤다.

이와 같은 요인들로 인해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정당A는 엄청난 비판을 당하면서도 진정한 경쟁상대 없는 초강력 정당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정당A의 후견주의에 대한 비판은 점점 강력해지고 있으며 몇 년 전 선거에서 정당A는 참패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후견주의적 정치 문화와 중앙집권적 재정 구조의 강력한 결합을 깨뜨리지 못한다면 이러한 승리는 지속되기 어렵다. 실제로 얼마 후 정당A는 수십 년간 지켜온 자신의 자리로 복귀하는 데 다시 성공했다.

이상의 내용은 2006년에 출간된 에단 샤이너의 책 <Democracy Without Competition in Japan>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한 것이다. 사례로 제시된 ‘이 나라’는 일본이고 정당A는 자민당이다. 하지만 결코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723
  "살로니카_유령의 도시"라는 책 구할 수 있는지요?   1
 이중배
1705 2014-08-18
  인기 없는 여당이 계속 승리하는 이유 
 Scheiner
4013 2014-08-12
721
  [IWFFIS] 8월 정기상영 <질, 이성애 도전기> 안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1723 2014-08-05
720
  [행사] 긴 노후를 대비하는 마지막 보루, 연금을 이야기하다 
 관리자
1861 2014-07-29
719
  우리역사 학계의 참담한 현실을 고백한 이희진교수님의 책을 소개드립니다. 
 김진규
1710 2014-07-24
718
  <철도의 눈물> 2쇄 오류 및 교환 안내 
 관리자
1942 2013-11-18
717
  IWFFIS 7월 정기상영회 <파푸샤> 상영 안내 
 IWFFIS 미교실
1591 2014-07-08
716
  2014 여름 자유인문캠프 수강신청 받습니다! 
 자유인문캠프
1711 2014-06-28
715
  '우리의 뇌리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과거사' 
 이민영
1836 2014-06-27
714
  [저자와의 만남] 신자유주의 시대의 권력과 저항 
 관리자
2171 2014-06-23
713
  [10대를 위한 미디어교실]신나는 성장통(性長通) 
 서울국제여성영화제
1683 2014-06-05
712
  [2014씨네페미니즘학교]밥 벌이의 품격 -노동유연화 시대의 여성노동과 생애주기, 그리고 일상적 쾌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1609 2014-06-05
711
  [비판적 실재론과 해방의 사회과학] 재고 있습니다. 
 관리자
1924 2014-06-03
710
  글과 사진으로 말하는 두 명의 작가를 만나다 
 관리자
1705 2014-05-29
709
  [강연정보] 인터페이스: 뉴미디어에서 영화로 
 중앙대첨단영상대학원
1723 2014-05-26

[1][2][3] 4 [5][6][7][8][9][1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