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쓴 이유," pp. 7-21.
"1장 부동산, 왜 무엇이 문제인가", pp. 2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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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이유
1. 한국 사회는 ‘부동산’이 결정한다
누군가 나에게 한국 사회의 이러저러한 양상을 설명해 주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히 ‘부동산’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이 책 전체를 통해 말해 보려 한다.
한국에서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는 부동산 자산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로 결정된다. 아파트에 사는지 연립주택에 사는지, 아파트에 산다 해도 어느 브랜드의 몇 평에 사는지, 주택 말고 땅이나 건물이 있는지 등 몇 가지 정보만 알아도 그 사람의 생활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고 어떤 정치의식을 갖고 어떻게 투표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부동산은, 주거 환경은 물론이거니와 개인 삶을 전반적으로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누가 어느 대학에 가느냐의 문제 역시 부모의 부동산이 결정한다. 부모의 부동산 자산이 많을수록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은 뚜렷이 높다. 은행 문턱의 높이도 부동산이 올리고 내린다. 부동산 담보를 제공할 능력이 대출 여부와 그 크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인간의 수명까지 관여한다. 부동산을 소유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부동산을 소유한 계층 가운데에서도 얼마나 소유하는지에 따라 평균수명의 통계적 차이는 매우 분명하다.
사람들은 돈을 벌면 대개 부동산에 눈을 돌린다. 여윳돈을 부동산이 아닌 데 투자한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곤 한다. 부정부패나 뇌물 사건도 대부분 부동산 때문에 일어난다. 언론의 논조도 잘 들여다보면 부동산 광고 수주 여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부동산에 울고 부동산에 웃는 나라, 직업과 노동 소득보다는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 소득이 불평등의 잣대가 되는 사회, 대한민국은 부동산 계급사회다.
2. 엄마 아빠 일 나간 사이에
가수 정태춘이 눈물로 부른 <우리들의 죽음>이란 노래가 있다. 1990년 3월 9일 어느 맞벌이 부부의 어린 자녀가 비극적으로 숨진 사건에 얽힌 사연을 담았다.
부부가 일 나가면서 아이들을 잃어버릴까 봐 문을 잠그고 출근한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 나 다섯 살, 네 살배기 어린 남매가 불에 타 숨진 이 사건은, 치솟는 방값에 시름하던 서민들의 아픔을 상징한 사건이었다.
필자는 당시 1980년대 중반 뛰어든 노동운동 현장에서 이 사건을 접했다. 참담한 마음 이루 말하기 어려웠다. 지금 부동산 책을 쓰고 있지만 이 노래만큼 우리 현실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2005년 10월 11일 서울 서초구 원지동 ‘개나리 마을’, 빈민들이 비닐하우스로 집을 짓고 사는 이곳에서 엄마가 공장에 야근하러 간 사이 불이 나 여섯 살, 네 살배기 형제가 불에 타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부동산 투기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을 흔드는 가운데 투기의 최대 피해자인 부동산 극빈층의 어린 두 아들이 참변을 당했다.
당시 필자는 5년간 책임을 맡았던 민주노총 대변인을 끝으로 노동 운동 현장에서 자리를 옮겨 심상정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었다(당시 심상정 의원은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나라의 경제 살림을 점검하는 국회 재정경제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지하 셋방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다가 채 인생의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하고 불에 타 죽어야 하는 아이들 앞에서 명색이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에 몸담아 온 사람으로서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15년 동안 나는 과연 무엇을 했단 말인가’라고.
2002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해 서민들 한숨 소리가 천지를 울리는데도 정작 국회나 정치권에서는 서민의 자리에서 부동산 문제를 진단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는 데 실패했다. 부유층을 대변해 온 한나라당이나 스스로를 개혁 세력이라 칭한 당시 여당은 물론이고, 이들을 비판하는 진보 세력조차도 서민들의 부동산 고통에 대해 무심했고 무능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점에서 필자 역시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그로부터 지난 4년간, 필자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국회도서관과 관계 부처 자료를 이 잡듯이 뒤지며 부동산 문제에 파고들었다. 부동산 문제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찾아 읽고, 메모하고, 분석했다. 부동산 귀신이 되어서라도 어떻게든 문제의 원인과 구조를 밝히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3. 부동산을 둘러싼 신화와 이데올로기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문제가 극도로 악화되면서, 어떤 경우에도 부동산 가격은 오른다는 ‘불패 신화’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신화를 떠받쳐 주는 각종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신화와 이데올로기는 부동산 문제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없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부동산 문제에 대해 불분명하거나 때로 이중적인 태도를 낳았다.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 행위에 대해서는 중대 범죄행위로 비난하지만, 누구든 여유 자금이 생기면 맨 먼저 부동산을 떠올리는 게 현실이다. 도덕과 규범의 차원에서는 부동산 거품이 꺼져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거품 붕괴가 경제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갖는 게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다. 결과적으로 부동산 신화와 이를 떠받치는 각종 투기 이데올로기는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의 모색을 방해하고 뭘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패배주의로 이어졌다.
‘부동산 투기 근절’은 어떤 의제보다도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였고 모든 선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공약이었다. 하지만 누가 집권해도 정부의 정책 방향은 ‘공급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과 이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나타났다. 정부가 동원한 통계 자료 역시 이를 합리화하는 기능을 했다.
민주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 역시 부동산 신화와 이데올로기를 불러들임으로써 부동산 문제에 대한 회의적 태도와 패배주의를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게 했다.
투기 불로소득을 좇는 욕망이 넘칠수록 성실한 노동과 이를 통해 얻는 정당한 소득이 천대받게 된다. 바람직한 사회 공동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을 기꺼이 감당하기를 꺼리는 풍조도 만연하게 된다. 최근 한국 사회가 중산층 위주의 소비문화와 소비 욕망이 지배하는 분위기로 급격히 쏠려 가게 된 것은 그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동산을 둘러싼 신화와 이데올로기는 무엇이며, 왜 문제인가? 부동산 투기의 먹이사슬을 이루는 자들은 누구인가? 이 먹이사슬에서 혜택받은 자는 누구이며 피해자는 누구인가? 무엇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는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안은 있는가, 없는가?
4. 통계의 신화에 통계로 도전한다
부동산 책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많다.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검색어 ‘부동산’을 치면 단행본만 5,000권이 넘게 뜬다. 대형 서점에는 대부분 부동산 관련 책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 도서 시장에도 부동산 열풍은 예외가 아니다. 신문과 방송 보도에서도 부동산 관련 보도가 빠지는 날이 없다. 술집이건 어디건 사람들이 모이면 부동산이 화제가 된다. 병을 오래 앓게 되면 의사 이상으로 아는 게 많아지듯, 워낙 오랫동안 부동산 투기에 시달려 온 탓에 ‘부동산 만물박사’도 많다.
이 책이 다른 부동산 책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이야기를 통계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는 300개가 넘는 부동산 관련 통계가 등장한다. 부동산과 관련된 이야기는 넘쳐 나지만 정작 부동산 문제가 왜 이렇게 되었나 하는 문제의 실체는 각종 신화와 이데올로기에 가려진 현실에 대해, 필자는 통계를 무기로 도전해 보려 했다.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이라 할지라도 통계적 사실로 그 근거를 입증함으로써 문제의 실체에 정확히 다가가고 싶었다. 부동산 가격이 올랐으면 얼마나 올랐는지, 그래서 얼마나 비싸졌으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숫자로 따져 보았다. 부자들이 소유한 집은 몇 채이며, 땅은 얼마나 되는지를 추적했고, 그동안 발생한 불로소득은 누구에게 얼마나 돌아갔는지 역시 통계로 입증하려 했다.
통계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사실 부동산 신화가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정부와 기업이 생산하는 수많은 통계의 왜곡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통계를 통해 통계의 신화를 따져 묻는 방법이야말로, 부동산과 관련된 기존의 논의 속에서 진실을 가려내고 잘못된 허상을 벗겨 내는 가장 효과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정부나 기업이 만들어 온 통계는 대부분 부동산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려는 것이어서, 제대로 된 통계를 확보하거나 만들어 내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건설회사가 집을 많이 지어야 주택문제가 해결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 쓸 만한 통계는 많지만, 그동안 지은 집이 누구에게 돌아갔는지를 분석한 통계는 없다. 주택 공급을 확대함으로써 주택 사정이 좋아졌다는 통계는 많아도 지하실, 판잣집, 움막, 동굴과 같이 처참한 곳에서 몇 명이 살고 있는지에 대한 통계는 2006년에야 ‘역사상 처음으로’ 제출받을 수 있었다.
부동산 소유와 관련한 통계는 투기가 하늘을 찌를 때 찔끔 나오다 만다. 그 가운데서도 집 부자, 땅 부자, 빌딩 부자가 대체 누구인가 하는 통계는 ‘천기누설’이나 되는 듯 국가 기밀로 취급하기 때문에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오랜 시간 ‘투쟁’해야 했다.
이런 조건에서 필자가 지난 4년간 일했던 국회의원실은 두 가지 점에서 부동산 문제를 분석하고 ‘자료와 통계로 입증’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하나는 장서 규모를 자랑하는 국회도서관을 맘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정부 각 부처에 자료를 요구할 권한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각종 통계는 이미 발표된 것은 물론 지난 4년 동안 부동산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각 부처에 요구해 제출받은 자료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민간 연구소나 학계의 연구 결과도 반영돼 있다.
이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통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국토해양부(구 건설교통부), 행정안전부(구 행정자치부), 통계청, 국토연구원, 한국은행, 국세청, 서울시,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등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및 산하 또는 유관 기관의 공식 통계를 우선으로 활용했다. 주택 가격 변동률도 정부 공인 통계인 국민은행 자료를 지표로 삼았고, 아파트 시가총액의 경우처럼 공식 통계가 없는 경우에도 국민은행 통계를 우선 활용했다. 정부의 각종 부동산 통계가 실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객관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민간 통계를 그때그때 편리한 대로 활용할 경우에는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식 통계가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졌을 때는 민간 통계를 함께 다뤄 보완했다. 예를 들어 가계 자산 중 부동산의 비중에 관한 통계는 2006년 통계청의 가계 자산 조사가 유일한 공식 통계지만, 그 내용이 매우 부실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상공회의소, 삼성금융연구소 등 민간 통계를 아울러 활용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통계는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로 국가통계포털(www.kosis.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통계는 인구‧가구‧주택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이며 5년마다 전수조사를 거치기 때문에 특히 주택과 주거 분야에 대한 실상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통계다. 다만, 5년에 한 번씩 조사하기 때문에 2005년 통계가 가장 최근 통계라는 한계는 있다.
땅값과 집값은 국토해양부가 매년 발표하는 공시지가와 공시가격 통계를 주로 이용했다. 다만 국토해양부 스스로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조사‧산정된 적정 시가의 80% 수준으로 공시”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두 통계는 실제 매매가격, 즉 시가와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경우 이를 시세와 가깝게 환산해 적용했다.
땅과 집을 누가 얼마나 갖고 있느냐와 관련된 통계는 행정안전부가 2005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토지소유현황>과 <주택소유현황> 자료를 사용했다. 아울러 국세청의 종합부동산세 과세 관련 각종 자료를 활용했다.
과거 국토개발연구원 당시부터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기초 자료를 생산해 온 국토해양부 산하 국토연구원의 방대한 통계와 자료 역시 이용했다. 주거 수요와 주거 실태 조사,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분석, 부동산 시장 관련 동향 분석 등 국토연구원 관련 통계는 대부분 홈페이지(www.krihs.re.kr)에서 볼 수 있다.
이 밖에 서울시가 매년 조사하는 <서울서베이>는 서민들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통계로 활용했고, 부동산 관련 금융 통계는 주로 한국은행 자료를 이용했다. 정부가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통계에서 빠진 내용은 국정감사 자료 등 정부 각 부처가 입법부에 제출한 자료를 활용했다.
5. 책의 내용과 구성
이 책은 모두 여섯 장으로 구성돼 있다.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읽어 가도 되고, 대부분 독립된 주제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관심 있는 장을 중심으로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1장에서는 부동산이 왜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따져 본다. 우선 해방 이후 땅값과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살핀다. 또 대한민국 부동산 가격의 총액을 통계를 동원해 땅과 집, 빌딩으로 나눠 계산한다. 우리나라 최고 집 부자가 혼자 1,000채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등 극도로 편중된 부동산 소유 실태 역시 자세히 추적해 볼 것이다. 그동안 부동산 가격이 올라서 생긴 불로소득을 계산해 보고 누구에게 혜택이 돌아갔는지도 알아볼 것이다. 나아가 부동산 가격은 왜 오르기만 하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고 ‘투기의 먹이사슬’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더듬어 볼 것이다.
2장은 부동산 투기가 한국 경제를 어떻게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투기는 셋방 사는 인구를 얼마나 불려 놓았으며 내집마련에 걸리는 시간을 얼마나 더 늘려 놓았는지 수치로 입증할 것이다. 내수 경제가 침체하는 과정과 중소기업이 중국이나 동남아로 이전하는 배경에 부동산 투기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통계로 따진다. 또 부동산 투기를 거듭할수록 건설업이 비대해지고 기업들이 부동산에 눈을 돌리며 결과적으로 금융이 왜곡되는 ‘토건국가’ 현상을 짚는다. 부동산 투기와 노동쟁의의 방정식도 수치로 조목조목 따져 본다.
3장에서는 부동산 투기가 어떻게 사람의 인생을 갈라놓고 있는지 따져 본다. 서울 시내 동네별 아파트값 격차가 어떻게 생활의 격차로 이어지는지를 아파트값 통계와 <서울서베이> 자료를 연결해 들여다볼 것이다. 소득 계층별 주거 생활 격차 편에서는 ‘가난한 사람은 낡은 단독주택에 살고 부유한 사람일수록 새 아파트에 산다’는 상식을 실제 수치로 입증한다. 부동산과 은행 문턱 격차 편에서는 은행이 서민에게 문턱을 높이면서 투기 자금을 대주고 있는 현실을 따져 본다. 아파트값과 서울대 합격률의 관계로 시작되는 부동산과 자식 교육 격차 편에서는 부동산 재산 격차 → 소득과 수입의 격차 → 사교육비 격차 → 자식의 학력 격차로 이어져 우골탑이 ‘아파(트)탑’이 된 현실을 분석할 것이다. 부동산과 건강 격차 편에서는 땅값이 많이 오른 동네 사람은 오래 살고 적게 오른 동네 사람은 일찍 죽는 ‘귀신도 곡할’ 현실을 살펴본다.
4장에서는 부동산 격차와 부동산 빈곤층의 실상을 살펴본다. 집이 100만 채 이상 남아도는데 국민 10명 중 4명이 셋방을 떠도는 이유도 따져 본다. 부동산 재산 격차가 빈부 격차의 핵심이 되고 있는 실상을 가계 자산의 구성 내역과 직장인의 실생활을 통해 들여다볼 것이다. 또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에 사는 부동산 빈곤층의 규모와 생활 실태, 지하실‧판잣집‧비닐하우스‧움막‧동굴에 사는 ‘부동산 극빈층’의 규모와 실태를 정부 공식 통계를 통해 종합적으로 점검함으로써 투기의 피해가 누구에게 전가되고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 볼 것이다.
5장에서는 대한민국 부동산 100대 부자의 모습을 살펴본다. 집 부자 100명이 소유한 주택 수와 주택 가격, 주택의 크기를 국세청과 행정안전부,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추적한다. 또 아파트, 단독주택, 연립주택 등 주택 유형별로 집 부자 100명이 어디에 살며 집값은 얼마인지를 알아본다. 재벌을 비롯한 100대 법인이 소유한 주택 재산과 주택 수도 추적한다. 500억 원은 돼야 낄 수 있다는 땅 부자 100명의 땅 재산은 모두 얼마이며, 10명이 서울시 5개 구 면적을 차지하고 100명이 서울시 면적의 3분의 2를 독점하고 있는 실상을 짚어 본다. 100대 법인의 땅 재산과 최신 부동산 부자로 떠오르고 있는 ‘얼굴 없는 100대 빌딩 부자’도 더듬어 본다. 끝으로 2008년에 발표된 전국 5,600여 고위 공직자 부동산 재산을 상위 100명을 기준으로 살펴본다.
6장에서는 대안을 찾아본다. 주택 재산을 기준으로 주택 계급을 구분해 맞춤형 주택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제2의 토지개혁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그 첫 단추로 택지 국유화의 경제적 가능성과 실효성을 통계로 따져 볼 것이다. 공영개발 편에서는 국민의 땅인 공공 택지를 건설 재벌에 넘기지 않고 100% 공공임대주택을 짓는 방안을 제시한다. 또 선분양제, 분양 원가 비공개, 임대 소득 비과세 등 건설 재벌에게 주어진 부동산 특권의 폐지와 함께 내집마련 지원 대책을 제시한다. 또 무주택자의 5대 스트레스(① 방 빼! ② 방값 올려! ③ 전세를 월세로 ④ 방 안 빠져 이사 못 가 ⑤ 전세금 떼일라)를 풀 수 있는 정책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끝으로 지하실‧판잣집‧비닐하우스‧움막‧동굴 등에 사는 160만 명에 달하는 부동산 극빈층의 주거 대책을 재원 마련 방안과 함께 제시한다.
6. 이 책이 나오기까지
이 책은 ‘부동산’이라는 키워드로 한국 사회를 분석한 것이자, 대한민국 부동산 문제에 대한 하나의 종합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지난 4년간 1년에 한 편씩 ‘통계로 보는’ 부동산 보고서를 썼다. 그중에는 필자 이름이나 심상정 의원의 의정 활동 내용으로 이미 세상에 공개된 것도 있다. 이 책은 그 보고서를 중심으로 엮었고, 이번에 책으로 펴내면서 새로 추가한 내용도 있다. 그동안 작성한 보고서가 ‘통계 반 글 반’이었다면, 독자들이 읽기 쉽게 ‘글 아홉에 통계 하나’ 식으로 고쳐 썼다.
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모든 것을 통계로 입증한다’는 필자 스스로 만든 원칙을 지키는 일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문제라도 통계를 찾아내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 내용은 알찼지만 속도는 더뎠다. 1주일 걸려 A4 한 쪽 쓰는 일이 다반사였고, 일주일 내내 국회도서관을 이 잡듯이 뒤져 겨우 통계 하나를 찾아내고 나서 혼자 만세를 부른 적도 있다.
어느 때부터는 ‘통계로 입증한다’는 몸에 밴 습관이 너무나 ‘징글징글’해서 더는 통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애 낳은 산모가 ‘애를 절대로 더 낳지 않겠다’고 한 뒤 또 애 낳자는 것처럼, 어느새 필자는 또 통계를 뒤지고 있었다. 책상과 뒤편 책꽂이에 쌓인 A4 프린트물이 필자 키의 3배는 되는 듯했다. 이제는 예전 자료를 보려 해도 어디 들었는지 찾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그때마다 필자를 다잡아 준 것은 지하방이나 비닐집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이들에 대한 부채감과 반성이었다.
필자는 대한민국 40대 중후반 대부분이 그렇듯 농촌이 고향이다. 얼마 전 아홉 살 때 서울로 이사 와 살았던 동네에 간 적이 있다. 당시 6만 원에 방 두 칸을 얻었는데, 지금은 6,000만 원을 주고도 얻기가 어렵다 한다. 그동안 전셋돈이 1,000배가 뛴 셈이다. 당시 필자가 살던 무허가 주택이며, 친구가 살던 앞집 비닐하우스며, 큰불이 나 다 타버린 뚝방 판자촌이며, 청계천 건너편 국수 무료 급식소는 자취를 감췄고 초등학교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처럼 재개발로 옛날의 모습이 다 사라진 것 같지만, 필자가 조사해 만든 부동산 통계 자료에는 비닐집, 판자촌, 지하방, 쪽방 심지어 동굴과 움막까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필자도 창문 없는 지하방에서 대낮에도 전깃불을 켜고 대학 입시를 준비했었지만, 벌써 30여 년 전 일이다. 지금은 세계 11위를 전후한 선진국에 들어섰는데, 지하방이며 동굴이며 움막에서 삶을 영위해야 하는 서민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이다.
30여 년 전 산동네 꼭대기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 보이는 건 조명을 밝힌 새빨간 십자가밖에 없었다. 그런데 요즘 서울 시내 밤하늘은 아파트 옥상마다 밝혀 놓은 원색의 조명이 압도하고 있다. 서울 밤하늘을 지배하는 고층 아파트 옥상의 조명을 보면서 필자는, 21세기 대한민국 사회가 아파트라는 새로운 신을 모시기 시작한 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돈이 모이면 그 돈을 부동산에 바친다. 벌이가 시원찮으면 빌려서라도 바친다. 부동산을 잘 모시는 사람일수록 높은 계급이 되고, ‘아파트신’과 ‘빌딩신’과 ‘토지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층 계급으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단지 인간이 사는 데 필요한 요건 중 하나일 뿐인데, 부동산을 신처럼 모시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가.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다. 의원과 보좌관의 고용 관계를 넘어 함께 활동하는 동지로서 격려해 준 심상정 의원을 비롯한 의원실 식구들의 도움이 컸다. 처음 부동산 공부를 지도해 준 경실련 김헌동 단장, 자료를 제출하느라 고생한 관계 공무원들께도 감사 인사를 전한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보고서가 나올 때마다 발표의 기회를 준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과 <레디앙>의 배려도 분에 넘쳤다. <프레시안> 박태견 초대 편집국장과 <레디앙> 이광호 선배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 책을 용기 내어 펴내게 된 데는 후마니타스의 제안이 큰 힘이 됐고, 독자가 읽기 쉬운 책으로 바꾸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다. 돈 안 되는 일만 골라서 하는 남편을 묵묵히 이해해 준 아내 송경민, 아빠의 초고를 열다섯 살의 눈높이로 읽고 ‘더 쉽게 쓰라’ 충고해 주고 삽화까지 그려 준 딸 해인에게 말로 표현 못했던 고마움을 글로 대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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